리모트 워크를 하며 시골에 정착한 지 어느덧 1년. 자연은 나에게 일상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그리고 계절이 삶의 흐름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는지를 몸소 가르쳐줬다. 도시에서의 일상은 계절과 크게 상관없이 흘렀다. 에어컨과 난방, 바쁜 스케줄과 교통 속에서 봄이 와도 체감하지 못하고, 가을이 와도 어느새 지나가곤 했다.하지만 시골에선 계절의 변화가 하루의 리듬부터 마음가짐까지 통째로 바꿔놓는다. 오늘은 그 생생한 사계절을 정리해본다.
봄 – 새로움이 샘솟는 계절, 루틴이 살아난다
겨울의 차가운 정적이 지나고, 하루아침에 주변이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몸도 마음도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봄은 시골 리모트 워커에게 ‘루틴을 회복하는 계절’이다. 아침에 문을 열면 흙 냄새와 새소리, 커피 한 잔을 들고 마당에 나가 해를 쬐는 시간, 날이 따뜻해지며 다시 산책과 자전거 루틴이 생김, 새로 오는 이웃, 귀촌 커뮤니티의 활동도 늘어남, 업무 몰입도도 다시 높아진다. 겨울 동안 웅크렸던 에너지가 조금씩 흐르며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늘어난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봄은 최적의 시즌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업무 방식에 변화를 주기에도 좋다.
여름 – 느림과 적응의 시간, 낮을 피한 리듬
여름은 시골에서도 만만치 않다. 특히 남부나 내륙 지역에선 습기와 폭염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도시의 냉방된 빌딩과는 다르게, 시골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요구한다. 이른 아침 5~7시에 집중 업무, 낮 12~3시는 휴식 또는 독서 시간, 해가 기울 무렵 다시 산책이나 운동, 식사는 최대한 가볍게, 계곡 근처에서 물놀이도 여름은 ‘일을 줄이고 쉬어야 하는 계절’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려준다. 그래서 여름에는 주로 루틴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조절한다. 한 가지 팁이라면, 초여름엔 집중 업무를 해두고, 한여름엔 쉬는 흐름을 만드는 것. 일과 쉼의 주기를 계절 단위로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다.
가을 – 몰입의 계절, 최고의 리모트 시즌
가을은 시골 리모트 워크의 절정기다. 아침저녁은 선선하고, 낮엔 햇살이 따뜻함, 창밖 논밭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집 주변에 감, 밤, 고구마가 쏟아짐,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창가의 업무 시간이 황홀, 이 시기는 집중력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피로도 낮고, 외부 유혹도 적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리모트 워커에게는 가장 창의적인 시즌이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정리하거나, 연말을 준비하는 마무리 계획을 세우기에도 적기다. 또한 지역 축제나 농산물 직거래 행사 등이 많아 일상에 약간의 재미도 생긴다.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 – 고요한 내면의 시간, 나를 돌보는 계절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깊다. 눈이 오면 바깥은 잠시 정지한 듯 멈춰버린다. 해가 짧아지고, 일찍 어두워짐, 외출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짐, 난방과 온기 유지가 생활의 중심, 자연스레 루틴은 느리고 단순하게 바뀜. 겨울은 리모트 워크에서 자기 돌봄과 정리, 회고의 시간이다. 이 시기엔 내년도 계획 세우기, 틈틈이 쉬어야 했던 일 정리, 건강 회복이나 명상 루틴 시도같은 ‘마음의 리모트’가 함께 이뤄진다.처음엔 너무 조용해서 답답하지만, 몇 주 지나면 그 고요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들만 남게 된다. 겨울을 잘 보내는 리모트 워커는 다시 봄을 더 가볍게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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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리모트 워크는 단순히 장소를 바꾼 근무 방식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면 루틴도, 마음도 함께 바뀌는 삶이다. 도시에서는 사계절이 배경음처럼 스쳐 지나갔다면, 이곳에선 계절이 삶의 중심이 된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계절마다 내가 다르게 존재한다.
리모트 워크가 익숙해진 지금, 나는 매 계절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과 함께 리듬을 맞춰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만족이자, 소도시에서 사는 이유다.